내 나이 스물 일곱,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는 미국 LA, 인천발 대한항공기를 타고 가다가 일본 도쿄 하네다에서 델타항공기로 갈아타야 했다. 한국 시간으로 저녁 9시 출발 비행기였기 때문에 공항에 미리 도착해서 공항도 구경하고 면세점도 구경할 겸 반차를 썼다. M군과 삼청동에서 만나 북촌냉면에서 점심을 먹었다. 설렁탕을 시킨 M군에게는 돌솥밥이 나왔고 김치찌개를 시킨 나는 흰 쌀밥이 나왔다. 어쩐지 김치찌개 가격이 싸다했다. 그래도 M군에게 이곳의 돌솥밥을 먹였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리고 안국역 하나은행 앞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갔다. 만원이라는 리무진 버스티켓이 비싸단 생각은 들었지만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그럭저럭 만족하기로 했다. 


드디어 인천공항. 이제 정말 한국을 떠나는구나, 라는 실감은 전혀 나지 않고 인천공항 건물이 참 세련되었단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티켓을 발권하고 수하물을 부치고(수하물센터 남자직원분이 참 친절해서 기억에 남는다.) 출국심사를 마치고 보안검색대를 지나... 말로만 들었던 인천공항 면세점에 드디어어 입성했다. 



기대했던 것만큼 좋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면세점 외관이 백화점 매장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런가. 면세점에서 살 물건들은 이미 인터넷신라면세점에서 주문했다. 동생들 선물로 줄 입생로랑 립락커 세트(7호, 9호, 12호 / $90), J언니가 부탁한 헤라 미스트쿠션 세트($61)였다. 인터넷면세점에서 적립금을 받은 걸 이용하니 최종 결제금액은 131,335원. 주문한 물품들을 면세점인도장에서 수령받는데 미스트쿠션과 립락커는 액체류라서 운이 안 좋으면 뺏길 수도 있다면서 밀봉포장을 굉장히 꼼꼼하게 해주셨다.  


K언니가 부탁한 면세담배를 샀는데 한 보루에 $19였다. 참고로 면세한도 내에서 1인당 1보루만 살 수 있다. 뒤늦게 부탁한 사람들에게는 사줄 수 없다고 했다. K언니와 통화하면서 면세담배값을 말했더니 우리나라 담배가격이 비싸서 화난다고 하더라. 하긴 요새 한국담배는 한 보루에 45000원 정도 하니 그런 말이 나올만 했다. 


K언니 담배도 샀고 본격적으로 면세점과 대합실을 돌아봤다. H언니가 LA는 볕이 워낙 세다면서 오기 전에 선글라스를 장만하라고 신신당부한 게 생각나 면세점 선글라스 코너를 가봤다. 톰포드, 디오르, 마크제이콥스, 레이벤 등 어지간한 선글라스를 써봤지만 내게 어울리는 건 없었다. 그래서 선글라스는 LA가서 사기로 했고, 맞은 편에 있는 화장품 코너를 갔다. 공항 내부가 워낙 건조하기도 했고 어차피 쌩얼(No BB, No CC)이니 뭘 발라줘야 했다. 키엘에 들러서 수분크림을 잔뜩 발랐더니 건조함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면세점 근처 게이트 앞 대합실에는 사람이 많았지만 외진 게이트 앞 대합실은 이렇게 사람이 없다. 올 설 연휴 출국하는 사람이 최다라는데 이렇게 사람이 없다니. 번잡한 면세점을 벗어나 조용한 이곳에서 마음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그리고 슬슬 한국을 떠난다는 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도쿄 하네다행 비행기에 올라탔고 비행한 지 1시간 정도 지나니 기내식이 나왔다. 대한항공 기내식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를 하고 있었다. 무생채, 김, 소고기야채조림, 간식은 초코렛이었다. 근데 맛이 음슴. 내가 싫어하는 메뉴 중 하나인 소고기야채조림이라서 더 그랬던 걸 수도 있다. 대한항공 기내식 맛있다고 한 사람과 다이다이 뜨고 싶었다. 그래도 맛은 없었지만 배가 고파 남기지 않고 다 먹은 건 함정.





비주얼은 나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시절 고기맛이 별로라서 남길 수밖에 없었던 급식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다. 그리고 저 블루베리 초코렛은 여행을 다녀온지 한 달이 넘은 지금 이 시점에도 먹지 않았다. 나름 좋은 초코렛으로 알고 있는데 손이 가질 않는다. 





도쿄 하네다 공항 근처의 야경이다. 도쿄 근처에 바다가 이렇게 가까운 줄 몰랐다. 항구를 따라 금색으로 물든 일대가 참 아름다웠다. 하강하는 순간에 사진을 찍느라 사진이 많이 흔들렸지만 그때 그 벅찬 느낌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가고 싶어지더라. 



대한항공기에서 내려서 델타항공기로 갈아타러 가야했다. 환승시간은 1시간이었기 때문에 다소 촉박한 시간이었다.(근데 나중에 LA에서 Seattle 경유할 때 환승시간은 30분이었다. 그땐 질주하다시피 했다.) 델타로 갈아타는 길에 하네다공항 면세점을 지나가는데 인천공항 면세점보다 괜찮아보였다. 약간 노란 톤의 은은한 조명 덕분에 고급스러워 보인다고 해야 하나. 면세점에 들어가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비행기를 타야 했으니까 매장 분위기만 대충 훑어보는 걸로 만족해야만 했다. 


델타항공기를 탔다. 항공기 내부는 대한항공보다는 연식이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델타의 분위기는 굉장히 편안했다. 좌석이 엄청 편안한 건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대한항공 크루들에게는 참친절하고 깍듯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델타 크루들에게는 비교적 여유롭고 쾌활하단 인상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소탈한 델타의 서비스 방식이 좋았다. 고로 다음에 미국 갈 때도 델타를 탈 듯. 델타 기내식은 뭐... 맛있지는 않았지만 나오니까 먹었다.





중간에 간식으로 나왔던 피자빵인데... 맛이 없졍... 정체를 알 수 없는 맛이라서 당황했다. 저 KISO는 물이고 흰 색에 초록색 테두리가 쳐진 건 포도젤리였는데 나중에 먹어보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저 피자빵에 비해서... 노란 봉투에 든 미니쿠키는 그저 평범한 버터쿠키였다.  



 


준다고 냉큼 먹기는 했지만 음... 대략 좋지 않다. 이걸 먹고 30분이 지나니 기내 전체를 소등했다. 일본 하네다에서 환승한 시간이 대략 자정에 가까웠으니 잠 잘 시간이 되긴 했다. 기내에서 읽을 책을 가져왔건만 이래서는 읽을 수도 없고 적당히 졸려오니 그냥 자기로 했다. 의자가 잘 젖혀지지 않아서 그냥 포기하고 델타에서 나눠준 얇은 담요와 목베개 비스무리한 걸 하고 잤다. 비행기에서 자는 게 불편해서 잠을 설칠까봐 걱정했는데 잠을 못 자기는 개뿔, 정말 잘 잤다. 내가 코를 안 골고 자는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꿀잠을 잤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름 비행기 체질인가 보다.  


암튼 한참 잘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이 켜졌다. 잠잘 때 불빛이 있으면 잠을 못 자니 바로 눈이 떠졌다. 앞을 보니 기내식을 실은 수레를 끄는 크루들이 있었다. 피자빵인 간식은 비록 맛이 없었지만 기내식은 괜찮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었다. 



 


이 기내식은 괜찮았다. 조각 사과, 메론, 귤을 참 맛있게 먹엇고 크루아상은 식감이 퍽퍽하긴 했지만 버터에 발라먹으니 괜찮았다. 방울토마토, 브로콜리와 버섯, 베이컨, 치즈가 들어간 달걀오믈렛은 간이 짜다는 걸 빼면 아주 흡족스러웠다. 블루베리 요거트도 맛있었다. 건조하고 갑갑한 기내에서 나름 신선한(?) 걸 먹으니 메말랐던 피부에 수분이 조금은 차오르는 느낌. 이 기내식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기내식을 먹고나서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이제 내려야 한단다. LA공항에 도착했건만 비행기가 들어갈 마땅한 게이트가 정해지지 않았는지 기내에서 30분 정도를 더 기다렸다. LAX 저녁 5시 35분 도착예정이었는데 좀 늦어졌다. H언니랑 형부는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을텐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공항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맘과 달리 나는 이곳에서 쉬이 벗어날 수 없었다. 델타항공에서 입국신고서 용지를 받지 못했는데 그걸 작성하느라 좀 늦어졌다. 내가 영어를 못하긴 했지만 입국심사대에 있던 직원분이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사람이라서 나름 편하게 작성했다. 겨우겨우 입국심사대를 통과해서 수하물을 찾고 이제 언니와 형부를 찾아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언니네 가족을 만났다.  


작년 8월에 보고 근 6개월만에 보는데도 엊그제 본 것처럼 친숙했다. 조카가 말이 많이 늘고 키가 컸다는 걸 제외하면 언니와 형부는 서울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장소에서 언니를 만났다는 반가움과 그럼에도 변한 게 많지 않다는 친숙함이 교차하는 오묘한 순간이었다. 더불어 언니를 잃으면 국제미아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때는 없었던 것 같다. 공항을 나와서 걷는데 나 말고는 니트를 입은 사람이 없단 걸 보고나서 밀려오는 후끈함. 춥디 추운 서울과 달리 이곳은 정말로 따뜻하구나. 






우리가 도착한 곳은 맨하탄 비치(Manhattan Beach)였다. 관광객들은 잘 오지 않는 곳이란다. 깔끔한 외관의 레스토랑, 카페, 비치웨어샵, 코스메틱샵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딱 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가로수길 해변 버전이라고 할까. 그래서인지 한껏 차려입은 젊은 멋쟁이들이 많았다. 장시간 비행으로 쩔어있는 나는 이곳의 진정한 쭈구리. 



언니가 좋아한다는 식당을 갔더니 불금이라서 대기를 해야 한단다. 원래 이곳이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단다. 이곳의 감튀와 미트비스킷이 참 명물이라는데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만. 일단 웨이팅 빠질 떄까지 맨하탄 비치 인근을 걸어다니기로 했다. 해안가 말고 맨하탄 비치 피어(Manhanttan Beach Pier)를 거닐었다. 라운드하우스 수족관(Roundhouse Aquarium)을 찍고 돌아오는데 산책하는 사람들이 은근 있었다. 가디건이나 청자켓 하나 가볍게 걸치면 좋을 선선한 날씨라서 걷기 좋긴 하지. 참고로 라운드하우스 아쿠아리움은 이게 무슨 아쿠아리움이야 할 정도로 작지만 물고기가 실제로 있단다. 그래서 조카가 여길 보더니 '물고기, 물고기' 하는데 귀여워, 귀여워.

  




맨하탄 비치 피어에서 바라본 맨하탄 비치 일대의 광경. 뭐,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광경이라고 하겠지만 감회가 남다르다. 오랜 비행으로 찌든 피곤을 훌훌 날려주는 것 같았다.   





미풍에 바다 짠내가 살며시 밀려오는데 서해안의 갯벌이 생각났다. 비릿한 냄새와 짭쪼름한 냄새가 뒤섞인 한국 바다 냄새와는 분명 다르지만 어쩐지 비슷한 느김을 주는 냄새. 후각이 인간의 기억 중 가장 오래가는 기억이라는 이야길 들었다만 여기서 뜬금없이 한국 바다가 생각날 줄이야. 그것도 여름 하늘 아래 파랗게 펼쳐진 망상의 바다나 제주도의 푸른 바다가 아니라 서해안의 갯벌이라니.  





피어도 찍었겠다. 이제 맛있는 저녁을 먹을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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