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우도

어제 비가 내린 줄도 모를만큼 화창했던 날씨,

설렘을 가득 안고 성산일출봉에서 성산항까지 걸어가는 길,

성산일출봉이 언제나 그랬듯

나도 나만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넘실대는 푸른 바다를 보면 언제나 즐겁고

느긋하게 누워있는 우도를 보면

그곳에 가고 싶다

언제 걸어도 좋은 이길을 걸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2014년에 비해 우도도 많이 변했겠지만,

그 변화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내눈으로 보고 싶었다.

배를 타고 우도를 향해 가볼까.

우도항에서 내려서 빨간 등대를 가봤어,

지난 번에 우도를 갔을 때 시간이 없어서 고작 1시간 30분밖에 못 머물렀거든

우도항에서 우도봉이 보이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어

어딜 가든 느긋하게 그곳을 둘러봐야 그 매력을 하나하나 알아갈 수 있는 것처럼

이날은 우도의 진면목을 느껴보기 위해 걸었어

사실 면허가 없어서 오토바이를 못 빌리는 것도 있지만, 나는 자전거도 잘 못 타거든.

우도 명물이라길래 땅콩아이스크림을 사먹어봤는데 생각보다 별로였어.
땅콩맛이 더 진하고, 가격이 더 쌌으면 만족스러웠을 것 같아.

투명한 물결에 반짝이는 햇빛은 만져질 것만 같았고

저멀리 보이는 성산일출봉을 보니 우도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어.

등산화만 안 신었어도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신선놀음을 했을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지, 뭐야.

우도 지천에 피어있던 토끼풀꽃을 구경하면서

저기 멀리 보이는 종달리 지미봉도 쳐다보면서

타박타박 걸었어

그러니 서빈백사가 가까워지고 있더라고

사람들이 우도 바다의 아름다움을 칭송하지만

걸어보니 우도 내륙도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더라고.

드디어 서빈백사에 도착했어.

벌써부터 서빈백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어.
이건 그나마 사람들이 나오지 않게 찍은 거야.

이런 환상적인 물빛이라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어.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이 마구마구 밀려드는 물빛이랄까,

보드랍고 하얀 모래 위에 앉아서 가만히 있었어.
하염없이 우도의 바다를 바라봤어.
잔잔한 파도가 밀려드는 소리를 들었고
진파랑, 하늘색, 에메랄드로 변하는
우도바다의 그라데이션을 지켜봤지.
그러다 물놀이하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했지.

이날은 산티아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언니랑 의기투합해서 우도를 함께 돌았어.
그 언니는 미술을 전공해서 여기서 서빈백사의 풍경을 수첩에 그리더라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우도의 풍광을 담아내는 그런 방식이 멋져보였어.

이 언니를 만날 줄 알았으면 12색 색연필이라도 가져오는 거였는데 말이야.
나는 색연필이 없으니 사진을 열심히 찍었어.

언니의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심심하지 않았어.
내앞엔 서빈백사와 우도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으니까.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았고,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참 행복했어.

그 언니 덕분에 서빈백사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어.
만약 혼자 왔더라면 서빈백사 사진 찍고 10, 15분 있다가 금방 갔을 테니까.

현무암 깔린 바다를 하도 찍어대서 그만 찍을 법도 하지만,

여기는 어제 봤던, 그제 봤던 곳과 다른 곳이라는 이유로 사진을 찍지.

우도는 작은 섬인데도 바다마다 깔린 모래가 다 달라서 신기했어.

우리는 회양과 국수군에서 회국수 2인분을 시켜먹었어.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에 들어갔는데도 웨이팅을 해야했어.
면을 삶는데 시간이 걸려서 주문한지 20분이 지나서야 음식이 나왔어.
회국수에 들어간 회는 두툼하게 썰려있어서 씹는 맛이 있었고,
국수의 탱탱한 면발이 인상적이었어.
회국수 가격은 1인분에 10,000원이었는데 2인분부터 주문가능하더라고.
만약 혼자 왔으면 이 맛있는 걸 못 먹고 갔겠지.

회국수를 맛나게 흡입하고 걸었어.

오후 5시 30분에는 배를 타야하니 우리의 발걸음은 빨라지기 시작했지.

뭐, 빨리 걸어간다고 해도 볼 건 다 보고 걸었어.

우도항을 기준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걸어가면 지미봉이 늘 보이더라고.
지미봉을 올랐던 나로서는 그게 참 좋았어.

여기는 하우목동항일거야? 아닌가? 천진항인가?
사실 우도를 걸어다닐 때 지도를 안 보고 걸어서 길을 잘 몰라.

이 섬을 한 바퀴 빙 돌면 어차피 우도항에 도착할테니까.

우도는 그늘이 없는 섬이라서 좀 덥긴 했어.

그래도 예쁘니까 봐줄만 했어.

해안도로를 따라 우도를 돌아다니다간
제 시간에 우도항에 도착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내륙길로 걷기로 했어.

돌담길이 이어진 내륙길,
기대하지 않았는데 푸릇푸릇한 들판이 이어진 길이라서 감탄했어.

우도 청보리밭을 지나다보니 문득 가파도의 청보리밭도 궁금해지더라.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처럼 반가웠던 청보리밭.

여긴 유채꽃밭인데 끝물이라서 꽃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아쉬웠어.

그래도 필터의 힘을 이용하면 이정도 노랑노랑은 나오더라고.

해초가 밀려들어 갈색으로 뒤덮였던 바닷가,

제주도를 여행다니다 보니 셀프웨딩 사진을 찍는 커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어

과연 나도 셀프웨딩을 찍는 날이 오긴 하는걸까

이제는 정말로 우도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야,

그렇지만 푸르름 가득한 청보리는 담고 가야지,

이번에 우도를 가면 우도봉을 꼭 오르겠다고 다짐했건만 이번에도 실패했어

뭐, 이것으로 우도를 또다시 갈 명분이 생긴 거지,
그때는 꼭 우도봉을 오를래.

간신히 마지막 배를 타고 우도를 떠났어.
안녕, 우도. 다음에 또 만나.
+
그렇게 언니와 나는 성산항에서 헤어졌어.
각자의 길을 가야 했거든.
언니는 다시 성산일출봉으로,
나는 위미리로 떠났지.
만남과 헤어짐이 자연스럽고
그게 섭섭하지 않았어.
여행길에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서
유쾌한 시간을 보냈고
아름다운 풍경도 봤고
맛있는 회국수도 먹었고
두고두고 꺼내 볼 추억이 생겼지.
더할나위 없이 좋았어.
혼자 여행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재미를
이제야 알았던 거지.
여행길에 만난 사람들과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낼만큼
친분을 쌓지 않았더라도
여행길을 함께 하는 순간이
즐거웠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
그때 언니가 준 명함을 잃어버린데다가
우리는 그 흔한 전화번호 교환도 하지 않았던지라
그때 찍었던 언니 사진을 아직까지 못 보내주고 있어.
산티아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그 언니, 잘 지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