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목요일. 제주도 여행 2일차.

원래는 성산일출봉에서 일출을 보려고 했지만 아침잠 많은 우리에게 일출은 무리데스요. 휴리조트 조식을 든든하게 챙겨먹고 느지막히 성산일출봉으로 출발했다. 여기까지는 나름 유유자적하고 한산한 도로였다.






하지만 성산일출봉 주차장 500미터 전부터 엄청나게 차가 막혔다. 하긴 제주도까지 왔는데 성산일출봉 같은 관광명소를 안 보고 갈 수는 없으니. 도로에다 차를 세워두고 성산일출봉까지 올라가고 싶었지만 주차는 주차장에 해야 하니까 지루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성산일출봉 무료 주차장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매표소로 갔다. 성산일출봉 입장료로 인당 2000원, 도합 4000원을 썼다. 






성산일출봉을 오르는 길. 정말 관광객들이 많았다. 평일이라서 한국인은 얼마 없었다. 대부분은 중국인이였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중국말에 여기가 제주인지 아님 북경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바라본 바다. 정상에 오르니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 볼 걸이라는 뒤늦은 후회 반, 그래도 왔으니 그게 어디야라는 자기만족 반. 내년 제주 여행에서는 꼭 성산일출봉에서 일출을 보리라. 남녘의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을 언젠가는 꼭. 근데 아침잠을 이길 자신이 음슴.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내려다 본 성산읍 일대의 풍경이다.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자그마한 건물들은 레고블록처럼 귀여웠다. 낮고 오래된 이 마을 대신 아파트촌이나 호텔이 있었으면 정말 끔찍할 것 같았다. 부디 이 오래된 마을을 앞으로도 오래 볼 수 있길.  






성산일출봉에 와서 경악한 게 있었다. 성산일출봉 앞에 위치한 3층 규모의 네이처 리퍼블릭 건물. 나보다 1주일 먼저 제주도를 다녀온 회사언니가 성산일출봉 인근이 상당히 상업화된 것 같다고 말한 걸 들은 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최신 가요가 크게 흘러나오고 나레이터가 호객행위를 하는 화장품 가게는 좀 너무했다 싶었다. 성산일출봉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진작에 사라져버렸지만 적어도 이곳 분위기에 맞춰서 음악이라도 좀 잔잔한 걸 틀어주면 안되는지.






성산일출봉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1시간 정도 걸렸다. 쉬엄쉬엄 사진도 찍고 풍경도 둘러보면서 오르다보니 그랬다. 옛날의 나였다면 일출봉을 오르다 포기하고 내려갔겠지만 지금의 나는 매우 가뿐하게 올랐다. 충분히 잠도 잤고 조식도 든든하게 먹었으니 에너지도 만땅.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느낀 감동을 사진에 담는 건 불가능했다. 파노라마로 찍어서 사진을 이어붙인다고 해도 말이다. 그때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상에서 느꼈던 그때 그 느낌을 고대로 느낄 순 없기 때문이다. 푸르른 풀이 바람결에 일렁이는 일출봉 너머로 보이는 고요한 바다, 그때 내 마음 속에서 일던 잔잔한 감동. 그걸 말로 표현하기란 참 어렵다.  






10월의 햇볕을 너무 우습게 봤다. 이번 여행에서 모자는 챙겨왔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거의 쓰지 않았고 챙겨온 자켓도 차에 던져놓고 나시원피스만 입고 돌아다녔다. 자외선차단지수50인 선크림을 쳐발쳐발했지만 수시간 내리쬔 직사광선의 효과는 굉장했다. 원래부터 피부가 까만 M군은 피부가 탄 티가 나질 않았지만 피부가 하얀 편이었던 나는 우도 땅콩밭 매고 온 아낙네마냥 피부가 그을려버렸다. 






성산일출봉을 내려오는 길. 성산일충봉을 둘러싼 푸른 바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하늘을 올려다봤다. 날이 흐렸던 전날과 달리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아직까지도 볕은 따사롭지만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오는, 돌아다니기 딱 좋은 그런 날씨.  






성산일출봉에서 보이는 우도의 모습이다. 성산일출봉과 우도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성산일출봉 인근 해안선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덧 성산항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도행 배에 올랐고 1시간 30분의 짧고 알찬 우도 스쿠터 투어를 하게 되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써야지.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일출을 보겠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성산일출봉을 올라가는 길, 운동을 싫어했던 어린 나는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라는 불만을 곱씹으며 올라가는 계단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분명 성산일출봉을 올랐고 일출도 봤지만 중요한 건 기억이 없다는 거다. 아마도 성산일출봉을 올라가다가 힘들었던 기억이 너무 강했기 때문일 거다. 






뭐, 이제는 이곳을 넘실대는 푸른 바다 위로 우뚝 솟은 성산일출봉으로 기억할 거지만. 암튼부디 내년 방문 때도 이날처럼 화창한 날씨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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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방목지 주차장에서 네비게이션을 켜고 거문오름을 입력하고 출발했다. 여행 전에 여행 일정을 짜면서 찾아본 바로는 마방목지와 거문오름이 상당히 가까웠던 것 같은 것 같은데 도로를 가도 가도 거문오름의 '거'자도 보이지 않았다. 한라산 성판악 휴게소 안내판을 보고 나서야 네비가 길을 잘못 안내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때가 이미 11시 45분. 거문오름으로 돌아가도 예약했던 시간인 12시를 훌쩍 넘겨서야 도착할 듯 싶었다. 부랴부랴 거문오름 탐방 안내소에 늦을 것 같다고 전화를 하니 원래는 늦으시면 안되는데 13시 탐방이라도 괜찮으면 거기 참여하라고 하셨다. 


우여곡절 끝에 거문오름 탐방안내소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하고 예약자 이름을 대고 탐방요금을 결제했다. 2인 도합이 4,000원. 원래 일정대로 12시 도착했으면 자유탐방까지 할 수 있었을텐데 망할 네비가 길을 잘못 알려줘서 늦게 도착하느라 13시 탐방에 원하는 자유탐방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때문에 애꿎은 M군에게 짜증을 엄청 냈다. 살아있는 보살 M군은 예약해서 왔으니 이왕 즐겁게 보고 가자고 날 잘 설득시켰다. 그래서 어느 남중 수학여행팀에 껴서 탐방을 하게 되었다.     





거문오름 탐방 출입증을 받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던가. 10월 1일 수요일 탐방을 위해서 거문오름 탐방 안내 홈페이지를 매일 들락거렸다. 거문오름 탐방인원이 하루 400명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탐방 전에 온라인 사전예약은 필수다. 참고로 거문오름 운영시간은 9시부터 13시까지. 매주 화요일은 휴식의 날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거문오름을 방문할 예정이 있다면 화요일을 피해서 가야할 것. 


- 거문오름 탐방예약 : http://wnhcenter.jeju.go.kr/index.php/contents/black/visit?sso=ok



원래는 10월 1일 수요일 12시 타임이 전부 매진이라서 10월 2일 목요일로 예약했다가 10월 1일 12시에 취소표가 생기면서 운 좋게 10월 1일 12시로 예약했다. 정작 늦는 바람에 12시에 못 들어갔지만... 암튼 탐방예약시간에 늦으면 짤없는데 운좋게 13시 타임으로라도 들어가서 다행이었다. 


참, 탐방이 끝나면 탐방출입증을 안내소에 반납해야 한다. 이걸 기념품이랍시고 집으로 들고 가려는 사람은 없겠지?






거문오름을 탐방할 때는 반드시 등산화를 착용해야 한다. 거문오름의 자연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등산스틱, 아이젠, 우산사용이 금지된다.(비 오면 우비를!) 뭐 거문오름을 돌아다녀보니 왜 등산화를 신어야 하는지 납득이 됐다. 오르락길, 내리막길이 생각보다 꽤 반복되니 만만한 트레킹 코스는 아니었다. 나무데크가 깔린 길이 아니면 미끄러지기 쉬운 곳도 종종 있었고. 



(사진 출처 : 거문오름탐방안내 홈페이지)


거문오름 탐방로는 총 3가지 코스가 있다. 


1. 정상 코스 : 1.8km, 1시간 소요

센터 입구 > 제1룡 > 전망대 > 삼거리 > 탐방로출구


2. 분화구 코스 : 5.5km, 2시간 30분 소요

센터 입구 > 제1룡 > 전망대 > 삼거리 > 용암협곡 > 알오름 전망대 > 숯가마터 > 화산탄 > 선흘수직동굴 > 탐방로출구 


3. 전체 코스  : 약 10km, 3시간 30분 소요(삼거리까지 해설사 동행, 그 이후 자율탐방) 

센터 입구 > 제1룡 > 전망대 > 삼거리 > 용암협곡 > 알오름 전망대 > 숯가마터 > 화산탄 > 선흘수직동굴 > 탐방로 출구


어차피 우리는 예약한 12시 타임을 놓치고 13시 팀의 일정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무런 선택 권한이 없었다. 그냥 수학여행 온 남중의 일정에 맞춰서 움직여야 했다.  





거문오름을 탐방하면서 참 좋았던 게 해설사 분의 설명이었다. 미술관에 가도 큐레이터의 설명을 피해가곤 했던 나였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예외였다. 탐방을 시작하기 전에 왜 해설사 분이 있어야 하나라는 의구심에 차있었지만 탐방을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해설사 분꼐서 거문오름의 지형, 식생, 역사적 일화 등에 대해 워낙 잘 설명해주셨다.


 동행했던 남중애들의 리액션도 워낙 재밌었다.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그들은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변성기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가 솜털을 이제 막 벗기 시작한 그들의 풋풋함을 숨길 수 없었다. 그들이 가진 생기와 활력, 재기발랄함이 20대인 나에게는 결여 되어있었다. 그래서일까, 이제 막 그리기 시작한 도화지처럼 채워나갈 것이 더 많은 그들의 가능성이 부러웠다. 





피톤치드 가득한 삼나무 군락지. 삼나무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잔잔하게 깔리던 나무데크를 밟으면서 언제 또 여길 올까, 다시 또 오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곳을 계속 걸어가다 보면 정상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서 내려다 본 거문오름 일대는 울창한 산림으로 우거져 있었다. 마치 보스몹이 나올 것 같은 수풀 던전처럼. 


정상 전망대에서 좀 더 가면 알오름 전망대가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알오름 전망대가 더 좋았다. 다양한 오름을 볼 수 있었으니까. 푸른 평지 위로 불쑥불쑥 튀어나온 오름들은 쓰다듬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여기는 알오름 전망대에서 내려가니 펼쳐지던 초원지대. 이런 갈대밭을 보면 영락없는 들판이다. 탐방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1시간 짜리 코스인 줄 알았다. 근데 가도 가도 끝도 없었다. 왜 이 여정이 안 끝나나 싶었더니 원래는 2시간 30분 분화구 코스였다는 거. 어쨌든 거문오름을 오래 오래 걷고 싶었던 나로서는 개이득.





거문오름은 곶자왈 지대다. 곶자왈이란 나무, 덩굴, 암석 등이 뒤섞여 수풀처럼 어수선하게 된 곳을 일컫는 제주도의 방언이다. 곶자왈은 화산이 분출할 때 굳어진 용암덩어리로 만들어진 지형인데 제주도의 동부, 서부, 북부지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사진으로 찍지 않았지만 곶자왈에서는 바위나 바위 틈새에서 가늘고 긴 뿌리를 내린 나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뿌리를 내릴만한 흙이 충분하지 않은 용암지대이다 보니 이곳의 나무씨앗들이 바위나 바위 틈새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는 것이다. 함몰된 지형이다보니 빛도 많이 들어오지 않고 바람이 적게 불어오기에 높은 습도를 유지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


거문오름을 걷다 보면 알겠지만 이곳은 오르막, 내리막, 즉 함몰된 지형과 융기된 지형이 많다. 좁은 지역이지만 지형 변화가 심해서 지형별로 기후 차이가 있다. 그래서 북방한계식물부터 남방한계식물까지 다양한 식생변화가 나타난다. 북방식물과 남방식물이 공존하는 유일한 장소이다 보니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나뭇가지가 바람결에 고요하게 일렁거리던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용암협곡도 지났고 일본군 주둔진지도 지났고 탐방 안내의 2/3 정도 왔던 지점이었던 것 같다. 해설사 분의 설명은 귓등으로 듣고 하늘을 올려다 봤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찬란한 빛을 느낀 게 얼마만이었을까.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뒷덜미에 흐른 땀이 식어가는 게 얼마만이었을까. 이런 풍광을 오롯이 품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2시간 30분이 아닌 장장 3시간을 돌아본 거문오름 탐방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12시 타임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징징거렸던 내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거문오름을 걷는 내내 감탄과 경이에 차 있었다. 탐방출입증을 반납하고 차로 돌아가는 길, M군에게 '여기 안 보고 가면 어쩔 뻔 했어'라는 말을 하면서 아까 짜증냈던 일에 대해 슬그머니 사과했다. 진짜 거문오름 안 보고 갔으면 어쩔 뻔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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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수요일 제주도 여행 1일차

마방목지 거문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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