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지 못할 간카게이, 그리고 우츠쿠시기하라 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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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날 토노쇼항 오키도 호텔에서 머물렀다.
토노쇼항(土庄港)에서 간카케이를 가려면
남행 후쿠다선(南廻り福田線) 하행 방면 버스를 타고
쿠사카베항(草壁港) 정류장에서 내려서
신현선(神懸線)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코웅테이(紅雲亭)에서 내리면 된다.
버스 시간표 및 노선은 쇼도시마 올리브버스 홈페이지를 참고.
http://www.shodoshima-olive-bus.com/dia.html

원래는 토노쇼항에서 아침 8시 15분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지만...
호텔 조식도 먹고 여유도 부리다가 늦게 나왔다.
아침 10시 10분에 토노쇼항에서 후쿠다선 하행 버스를 타고
10시 38분에 쿠사카베항에서 내렸다.
10시 50분에 코웅테이행 버스를 타고 11시 3분쯤,
종점 코웅테이, 간카케이 로프웨이 입구에 도착했다.

원래는 간카케이 등산로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막내의 극렬한 반대로 인해 로프웨이 왕복권을 구입해야 했다.
2015년 10월 기준 간카케이 로프웨이 왕복권 가격은 1인당 1220엔,
로프웨이 배차간격(?)은 12분 정도.
간카케이 관련 최신 정보는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될 듯.
http://www.kankakei.co.jp/index.html

간카케이 로프웨이 안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이게 은근 중독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마성의 브금...

간카케이는 일본 3대 계곡 중 하나로
단풍이 그렇게 아름다운 협곡이란다.
10월 초순의 간카케이는 여전히 짙은 푸르름이 압도적이었지만,
구석구석 노릇노릇한 기운이 스며들어 있었다.
지금 봐도 이렇게 감탄이 절로 나오는데,
붉은 단풍이 제철인 10월 하순에서 11월 초순에 오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질까.


곳곳에 솟아난 기암괴석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드디어 간카케이 전망대 도착!

간카케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세토내해도 아름답지만,
간카케이의 산세도 인상적이었다.

간카케이 전망대 앞에서 어느 일본인 노부부를 찍어드렸다.
금슬이 좋아보이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니 내 마음도 훈훈했다.
인상 좋던 그 할아버지는 우리 사진을 찍어주시겠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큰 머리와 짧은 몸뚱아리라는 신체적 단점이 부각된,
심지어 눈을 감은 그 찰나의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한,
할아버지의 손가락이 사진의 조연으로 친절하게 출연한,
극사실적인 사진을 찍어주셨다.
막내는 키도 크고 팔다리가 가늘어서 괜찮지만
호빗인 나는 그게 아니무니다...
그렇지만 이 또한 여행의 추억이라고 생각하니 즐거웠다.

전망대 앞에서 티없이 환하게 웃고 있는 막내는
이날 우리가 얼마나 많이 걷고 걸을지 몰랐겠지.
그건 나도 몰랐어.

키가 작아서 발꿈치를 들어야 했던 간카케이 인증샷.

세토내해의 미려한 풍광과
간카케이의 웅장한 산세를 보니
행복이 마구마구 밀려왔다.
전망대에서 한번 슥 보고 내려오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사실 이번 쇼도시마 여행에
간카케이에서 우츠쿠시기하라 고원까지
걸어가는 일정이 포함되어있었다.
여행 오기 전에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니
거리가 6킬로길래 이정도면 걸어가기 무난하다고 생각했다.

간카케이 전망대 부근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지만
우츠쿠시기하라 고원 방면으로 갈수록 인적은 드물어졌다.
아니, 사람들이 없었다...
걷는 사람은 오직 우리 둘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먼 길을 불평불만 없이 걸어준 막내에게 감사할 따름.

당시에는 사람들이 없는 이 길을 걸어가는 게
무섭게 느껴지기 보다는 한산해서 좋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이게 위험한 행동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그것도 인적이 드문 산길과 도로를 걸어다니는 건
사실 굉장히, 굉장히 무모한 행동이다.
일본이 아무리 치안이 좋은 나라라고 해도
불상사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 주의해야한다.
요근래 한국에서 일어난 등산로 살인 사건들을
생각해보면 이런 건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은 문제인 거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간카케이와 우츠쿠시기하라 고원의 풍경을
무탈하게 잘 보고 돌아왔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어쨌든 우츠쿠시기하라 고원까지 걸어가는 내내,
이런 광경을 쉴새없이 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우리가 걸었던 도로는 대략 이랬다.
사람은 당연히 없고 차들도 정말 드물게 다녔다.

쇼도시마에 야생 원숭이가 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표지판까지 친절하게 있을 줄은 몰랐다.
한국으로 치면 야생동물 출현주의 표지판 정도 되려나.

도보여행의 좋은 점은 차로는 그저 지나쳐버렸을,
아름다운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거다.
천천히 걸으면서 풍경을 온전히 내안에 담는다는 것,
정말이지 근사한 경험이다.
직접 걸어봐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다.

파노라마로 담아보려 해도 담기 불가능한 감동.

그렇게 걸어가다 야생의 원숭이를 만났다.
사람들 봐도 놀라지 않고 도망가지도 않는다.
자기 할 일 하기 바쁘고 닝겐따위 아웃오브안중.

이렇게 지척에서 사진을 찍어도 관심을 1도 주지 않는다.

막내랑 나랑 원숭이들의 털이 너무 부드럽고 고와 보인다고 난리를 떨었다.
막내 왈 "쟤들은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잖아. 그러니까 털이 부드럽지."
그렇다.
사회생활의 모진 풍파를 겪는 우리가
스트레스로 인해 푸석푸석한 피부를 갖는 건 당연한 일이다.
소싯적 나도 꿀피부를 자랑했건만...
사춘기 시절에도 여드름 잘 나지 않는 좋은 피부였건만...
지금은... 망했당...

야생의 원숭이들과 이렇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도
우리가 걸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터.
후후후.
걸어가는 길은 멀지만 이런 잔재미가 있어서 걷는 보람이 있다.

막내의 우월한 뒷태를 감상하며 걸어보자.
부모님은 왜 막내에게 저런 기럭지 유전자를 주셨던 걸까.
나는 왜 아빠의 큰 머리와 엄마의 작은 키를 물려받게 된 걸까.

슬슬 우츠쿠시기하라 고원과 시호자시 전망대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참고로 쵸시케이는 쇼도시마 원숭이들이 많이 있는 관광지다.

우츠쿠시기하라 고원과 시호자시 전망대가 코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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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우츠쿠시기하라 고원.

일단 1시간 30분을 걸어왔으니 조금만 쉬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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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풍경이 360도 펼쳐지면 걸어온 보람이 차고 넘치잖아...♡

암, 이런 게 바로 호연지기지.

살아있음이 감사하게 느껴지던 순간.



이건 정말 실제로 봐야 한다.
직접 보면 쩐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우츠쿠시기하라 고원의 거대한 석판 위에서 사진을 찍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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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츠쿠시기하라 고원은 인생 사진을 건지기 최적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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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검정티에 청바지 하나 입었을 뿐인데 모델핏이라니...
세상은 불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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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막내가 찍어준 나는...


막내야...
수평은 좀 맞춰서 찍어주지 그랬어...
너 나한테 불만있음 말로 하지,
사진으로 이러기야 ㅠㅠ
같은 아이폰유저끼리 왜 이래...

그래도 나름 인생사진 찍어줘서 고마워, 막내야.



서로를 예쁘게 찍어주는 재주를 없는 자매가 와도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는 그곳의 이름은,
우츠쿠시기하라 고원!

누누이 말하지만,
우츠쿠시기하라 고원의 360도 전망은 직접 봐야 한다.
우츠쿠시기하라 고원에서 사진도 실컷 찍었겠다,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시호자시 전망대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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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책로를 따라서 좀만 걸어가면 된다.

이곳이 시호자시 전망대.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시호자시 전망대를 오르면서
여기가 무너질까봐 무서웠다.
오죽 했으면 막내가 그만 좀 부들부들 떨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시호자시 전망대에 보는 뷰도 끝내준다. 이야앙.

시호자시 전망대는 이름 그대로
밤하늘의 별을 보기에 정말 좋은 전망대일 듯.

안녕, 시호자시 전망대.

잘 있어, 우츠쿠시기하라 고원.

이제 다시 간카케이 전망대로 돌아갈 시간.
막내는 돌아갈 길이 막막한지
생기 넘치던 아까와 달리 지쳐보였다.
솔직히 나도 돌아갈 일을 생각하면 깝깝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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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보우하사.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터덜터덜 지친 기색으로 걸어가는 우리가 불쌍해 보였는지,
어느 친절한 일본인 아저씨께서 우릴 간카케이까지 태워주셨다. 올레!
토노쇼 항까지 데려다주신다는 걸 간신히 말렸다.
그저 우리를 지나쳐 갈 수도 있었지만
차에 타라고 머저 권해주신 그의 친절함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간카케이로 가는 아저씨의 차 안에서
진심에서 우러나온 "혼또니 아리가또고자이마스"를 열번은 외쳤다.
지금도 정말 감사합니다.
잘 지내고 계시나요?

간카케이에 돌아온 시간은 어느덧 오후 2시 20분.
많이 걸었으니 체력소모가 극심했고 열량섭취가 시급했다.


평범한 우동맛이다. 추천하지 않지만 한끼 떼우기 적당한 그런?

간카케이에서의 마무리는 올리브 아이스크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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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셀고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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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3일 쇼도시마 간카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