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21. 08:45 다독다독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0.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었다. 내가 왜 차였는지를 돌아보게 한 고마운 책이었다. 지금이야 이별후유증따위 사라졌지만, 올 초에는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정말 많이 괴로웠다. 장장 7년을 만났으니까, 사소한 일상 깊숙이 스며든 그의 존재감을 지우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를 많이 원망했고 이미 떠나버린 그 마음을 잡으려고 구질구질하게 매달리기도 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식어버린 사랑을 다시 지피려는 시도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겠지만, 그땐 그랬다.
1.
"이러한 점에서 개인은 집단, 민족 또는 종교와 매우 흡사한 행동을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사소한 결점까지도 낱낱이 비판하고 자기 자신의 결점을 천연덕스럽게 무시해 버린다. 항상 다른 사람들을 비난학 개조하기에 바쁜 것이다. 두 사람이 모두 이와 같이 하면 - 아주 흔한 일이지만 - 두 사람의 관계는 상호 투사의 관계로 변한다. 만일 내가 오만하거나 우유부단하거나 탐욕스럽다면, 나는 상대방의 이러한 점을 비난하고 나의 성격에 따라 그를 고치거나 처벌하려고 한다. 상대방도 이와 같이 한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그들 자신의 문제를 무시하는 데 성공하고 따라서 그들 자신의 발달에 도움이 되는 조치를 하는데 실패한다." - 136~137p
나는 그의 사소한 결점을 견디지 못했고 그걸 고치길 종용했다. 그러면서 나의 결점을 고치지 못했다.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성미, 오만방자한 태도, 상처 주는 말을 쉽게 내뱉는 언행,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는 이기적인 태도, 게으름. 그의 우유부단함이나 솔직함을 비판하면서 나야말로 한없이 우유부단하고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아달라고 수없이 신호를 보냈지만 나는 그걸 무시했다. 내가 정해놓은 틀에 그를 맞추려 했고 정작 나는 변한 게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기준에 상대방이 전적으로 맞춰달라고 요구하는 건 그의 존엄을 무시하는 폭력과 다를 게 없었다.
2.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고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을 위해 원하며, 주는 데서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받는 데서만 기쁨을 느낀다. 그는 거기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만 외부 세계를 본다. 그는 다른 사람의 욕구에는 흥미가 없고 다른 사람의 존엄성과 통합성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유용성을 기준으로 모든 사람과 사물을 판단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사랑할 줄 모른다." - 85p
나는 지독히도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늘 나 자신이 최우선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귀기울이지 않았다. 설사 그걸 듣는다고 해도 잠시뿐이었고, 그가 내가 원했던 것들을 대부분 흘려들었다. 내가 사랑을 주는 방법도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었다. 내게 원하는 형태의 사랑을 주지 못한다고 불만을 품었지만 나 또한 네가 바라고 원했던 형태의 사랑을 주지 못 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아달라는 것. 오랜 시간을 함께 했지만 나는 그걸 해주지 않았다.
3.
"내가 독립을 성취할 때에만, 다시 말하면 목발 없이, 곧 남을 지배하거나 착취하지 앟아도 서서 걸을 수 있을 때에만 존경이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존경은 오직 자유를 바탕으로 해서 성립될 수 있다. 프랑스의 옛 노래처럼 '사랑은 자유의 소산이며 결코 지배의 소산이 아니다." - 62p
나는 의존적인 사람이었다. 나의 두 발로 세계에 서려 하기보다는 그에게 기대려고 했다. 그의 품 안에서 안정을 찾으려 했다. 사랑이 불안을 사라지게 하고, 외로움을 채워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서지 못하는 존재가 어떻게 안정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건 불가능하다. 스스로를 구하는 건 오직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으니까. 결국 타인에 의한 구원은 일시적이다. 관계가 끝나는 순간, 구원도 끝나버리므로. 서로 의지하는 관계가 아닌, 어느 일방이 의존하는 관계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의존의 대상이 된 상대방은 언젠가 나가떨어지기 마련. 오로지 나의 힘으로 안정감을 이뤄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4.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 13~14p
나는 늘 사랑받길 원했지, 어떻게 사랑할 지 고민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어떤 사랑을 받길 원하는지, 상대방을 어떻게 배려해줘야 쌍방의 관계에서 편안함과 행복을 느낄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5.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다는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날 바라보는 게 아니고 날 바라보고 있다는 너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 오지은 <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
어쩌면 나야말로 널 사랑하는 게 아니고 널 사랑하고 있다는 나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네가 이별을 고했을 때 매달렸던 것도 사실은 사랑이 아니라 7년의 시간이 끝나버렸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 때문 아니었을까. 어쩌면 너라는 사람보다, 너를 사랑했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을 사랑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6.
"내가 자립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집착한다면, 그 또는 그녀는 생명을 구조하는 자일 수는 있지만 그 관계는 서로의 관계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조건이 된다." - 153p
아픔이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고 했던가. 이별로 괴롭고 힘들었던 시기가 다 지나가고 정서적으로는 완연한 평화기에 접어들었다. 친구들과의 함께 혹은 나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행복함을 느낀다. 이제야 비로소 혼자 힘으로 설 수 있게 되었다. 사소한 일로 일희일비하는, 여전히 불안정한 사람이지만 나름의 안정을 누리고 있다.
7.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나의 지난 연애도 그저그런 평범한 연애 중 하나에 불과했던 거다. 순수하고 찬란했던 시기의 지고지순한 연애였다는 점은 조금 특별할 수 있겠지만, 결국 만남으로 시작해서 이별로 끝나는 보통의 사랑이었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 서로의 전부를 쥐어주던 때가 / 우리에게도 있었다." - 박준 <마음 한철>
8.
"사랑은 휴식처가 아니라 함께 움직이고 성장하고 일하는 것이다." - 139p
다음 사랑은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랑을 꿈꾼다. 서로 맞잡은 두손을 놓지 않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할 수 있는 사랑,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랑,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사랑, 그리고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겠단 동기부여를 해주는 그런 사랑.
언젠가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그런 사람, 어딘가에서 맛있는 걸 먹게 되면 다음에 함께 와야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런 사람, 손만 잡고 하염없이 걸어도 마냥 좋은 그런 사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옆에 있으면 참 좋겠다 싶은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브라운아이즈의 <사랑(I wanna fall in love with you)>을 함께 듣고 싶다.
9.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62p
그러려면 일단 나부터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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