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 온지 벌써 4일째다. 오늘은 라끄마(LACMA)를 가는 날이다. 라끄마에 입성하기에 앞서 열량보충부터 하러 가기로 했다. 언니와 걸어서 30분을 갔을까, 한 브런치 카페에 들어갔다. 입구부터 느낌적인 느낌이 온다. 





나는 오믈렛 버섯토스트, 언니는 연어샌드위치를 시켰는데 매우 만족스러웠다. 보드랍고 촉촉하고 고소한 오믈렛과 잘 구운 버섯, 그리고 신선한 여린잎 샐러드는 적절한 아침식사였다. 배부르게 아침을 먹고 나와서 LACMA로 갈 때는 버스를 탔다. 여기에서 LACMA까진 버스로 딱 2정거장 거리였다. 






# LACMA(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라끄마 연간회원인 언니로부터 라끄마 입장권을 받았다. 이번 여행동안 언니의 은총이 닿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참, 고맙고 감사한 인연이다. 어쨌든 언니와 함께 맛있는 라끄마 커피를 마시고 언니는 밀린 집안일을 하러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혼자서 LACMA를 돌아보기로 했다.  




라끄마 연간회원인 언니에게 온 라끄마 소식지인데 현재 전시, 예정된 전시에 대한 간단한 알림을 전하고 있었다. 소식지를 대충 훑어보고 일단 건물 안으로 냉큼 들어갔다. 

라끄마는 일부 전시를 제외하고는 사진 촬영이 가능했다. 물론 플래쉬를 터트리는 건 안 된다. 나는 적당히 눈치껏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찍었다. 멋진 작품사진을 남기는 게 아니라 내가 이곳에 왔다는 기록사진을 찍는 데 의의를 뒀기 때문에 라끄마에서 찍은 사진은 사실 형편없다... 그래도 이런 엉망인 사진이여도 라끄마에서 느꼈던 벅찬 기분과 감동이 살아나는 게 신기하다. 





피카소가 청색시대에 그린 작품. 정확한 작품명은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피카소에 대해 인체를 괴랄하게 그리는 입체파의 대부로 알고만 있지만 그가 멀쩡한 인물을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입체파 작품보다는 우울함과 애잔함이 뚝뚝 묻어나는 청색시대의 작품을 좋아하는지라 이걸 한 컷 찍었다. 이마에 어리는 창백한 빛과 음울한 눈빛, 그림 전반에 서린 오묘한 청색의 표현은 실제로 봐야 한다. 





태피스트리 비슷한 거였는데 각종 과일과 꽃이 새겨진 화려한 패턴이 딱 내 스타일이라서 찍었다. 이런 것도 만들려면 정말 어지간한 금손이 아니고서는 안 될 것 같다. 곰손을 타고난 나는 단추 하나도 제대로 못 꿰니까 이런 거라도 보고 찍으면서 대리만족을 한다.

20대 초반에는 세련된(칙칙한) 모노톤이 좋았는데 2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갈수록 색감이 강렬하고 패턴이 화려한 것에 끌린다... 내 혈관에도 우리 문 여사의 피가 진하게 흐르고 있나 보다. 





모가지를 길게 그리는 모딜리아니. 사실 모딜리아니 풍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달리처럼 아예 약 빤 그림이거나 아님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처럼 기백 넘치는 그림을 좋아하는데 그럼에도 그의 그림에는 뭔가가 있다. 아마도 그의 그림보다는 그의 연인 잔느와 얽힌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모딜리아니가 죽자 그의 연인 잔느는 임신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이런 비극이 얽혀있어서 그런지 그의 그림은 유독 더 우울하고 허무하게 느껴진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 예술의 전당에서 아직도 마크 로스코 전시회를 하고 있으려나? 재작년에 리움에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얼마나 가슴 벅차던지.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은 워낙 기대를 했고 그 기대에 부응했다지만 별 기대로 하지 않았던 로스코의 작품에 풍덩 빠져버렸다. 뭐랄까, 신을 믿지 않지만 종교적인 경건함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거대한 캔버스 위에 단색으로 칠한 거 말고는 별 거 없으면서 왜 이리 경건한지. 암튼 이날 라끄마에서 로스코의 작품을 뜻하지 않게 영접해서 기뻤다. 





어린 아이의 낙서 같은 호안 미로의 작품. 얼핏 보면 정말 유치해보이는데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다는 비평가들의 능력은 대단할 따름이다. 이건 아마도 호안 미로 작품이라서 찍었던 것 같다. 천진난만한 느낌이 맘에 든다. 근데 비평가들은 겁나 진지하고 근엄한 주석을 달겠지만ㅋㅋㅋㅋㅋㅋㅋ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파이프 그림이다. 마그리트는 개념에 의문을 던지는 작품들을 많이 그렸고 실제로 그는 본인이 화가보다는 철학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작품만 봤을 때는 난해한 감이 적지 않지만 그럴 때는 <미학 오디세이2권>을 펼쳐보면 된다. 마그리트의 작품과 계보, 그가 사용한 개념에 대해 상세한 설명이 나와있다. 하지만 그걸 읽은지 너무 오래 되었으므로 지금은 다 까먹었다. 역시 사람이 이래서 복습이 필요한 거였어... 마그리트의 그림을 영접하면 감동의 쓰나미가 밀려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러진 않았다. 붓터치가 참 정갈하다는 감탄을 하게 됐다. 암튼 르네 마그리트 전이 한국에서 다시 열릴 일은 없는 걸까ㅠㅠ 전시회도 보러 가고 굿즈도 잔뜩 살 용의가 얼마든지 있는데 흑흑.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으로 그의 작품을 보러 가는 게 더 빠를까.  





이것 역시 마그리트 작품. 그의 작품에는 열쇠, 잔, 비둘기, 파이프, 눈, 파란 하늘과 구름. 마그리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데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대상을 낯설게 돌아보게 한다는 게 참 흥미롭다. 달리와 마그리트 둘다 초현실주의로 분류되지만 이 둘이 초현실을 표현하는 방법은 너무나도 다르다. 달리는 아예 꿈과 환상의 세계를 창조해서 '도대체 이 괴이한 건 무엇일꼬?' 라는 생각이 들 게 한다면 마그리트는 일상을 조금만 비틀어서 '응? 뭔가 이상한데.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달리는 약 빤 또라이, 마그리트는 점잖은데 꿍꿍이가 의뭉스러운 노인 느낌이다. 어쨌든... 그래도 마그리트를 영접했으니 이것 또한 영광.  






까불까불거리는 이 유쾌한 작품은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작품이다. 현대인의 일용할 주식인 스팸을 소재로 삼았다니 앤디워홀다웠다. 팝아트에 대한 지식은 일천하다만 이 그림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따뜻한 밥 한 공기에 스팸 한 조각이 간절해졌다는 거였다. 스팸만한 밥 도둑이 없지, 암~ 

라끄마에서 파는 기념엽서 중에 이 작품도 있었고 살까 말까 고민했는데 결국 사진 않았다. 이걸 사면 스팸을 찬양하는 이력이 빼도박도 못하게 될까봐 그랬는데 조금은 후회된다. 방에 붙여놓고 한 달에 한 번 스팸데이 열어서 스팸이라도 구워먹을걸... 






라끄마에는 워낙 많은 전시관이 있다 보니 모든 전시관을 돌아보는 건 일정상 무리였다. 그래서 쉬엄쉬엄 발길 닿는 전시장으로 쏘아다녔다. 다른 전시관 건물로 이동하는 중간에 LA시내의 풍경을 찍었다. LA에도 많은 건물들이 들어섰지만 고층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서울에 비하면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마침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하늘은 정말 파랗고 흘려보내기 아쉬운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어쨌든 고전미술부터 현대미술의 흐름을 따라다닌 다음으로 보게 된 전시는 중동 출신 작가들의 기획전이었다. 여성 인권, 빈부 격차, 디아스포라, 이외에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전시회였다. 당시에는 설명을 자세히 읽고 그랬었는데 이걸 쓰는 시점이 어언 5개월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다만 기억에 어렴풋이 남는 건 사회적 문제를 접근하고 표현하는 화법이 직설적이기 보다는 은유적이고 이를 세련되게 풀어냈다는 거다.






이건 1920년대 독일 영화를 다룬 전시회였는데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에 점점 시동을 건다는 느낌이 드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어쨌든 20세기 초반 포스터들은 정말이지 취향저격ㅠㅠ 게티 센터에서 봤던 전쟁 관련 전시회에서 봤던 것들도 정말이지 내 취향ㅠㅠ 







아마도 라끄마 어딘가의 천장?





이외에 라끄마에서 많은 전시회를 봤지만 그걸 정리하려면 귀찮아서 패스~ 사실 라끄마에서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아서 정리할 건덕지도 없다.






라끄마 옆 행콕 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 2013년에 리움에서 알렉산더 칼더 회고전이 열렸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가지 않았다.(이놈의 게으름이 놓친 전시회만 몇 개인지...ㅋㅋㅋ) 바람결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칼더의 작품을 멍 때리면서 조금 봤다.







라끄마 앞 횡단보도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라끄마 스티커. 라끄마에 입장시 이런 스티커를 붙여주는데 라끄마 관람을 마친 사람들이 자신들의 흔적을 이곳에 남기고 갔나 보다. 이런 풍경을 우연히 발견하는 게 여행의 잔재미 아닌가. 


이렇게 라끄마 관람도 끝났겠다, 언니와의 약속시간이 좀 남아있었다. 그래서 언니네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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